영화 리뷰

<매그놀리아> 1999, 폴 토머스 앤더슨

Heeji 2023. 6. 16. 22:50

극장에서 재관람한 매그놀리아. 너무 옛날에 봐서 새롭게 보이는 씬도 많았다.

의외였던 점은 영화를 보고 난 뒤 내용이 아닌 기술적인 측면에 대해서 곱씹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와 잘 맞는, 좋은 주제들을 가지고 있는 영화들은 내 삶과 대조해서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 매그놀리아를 보고서는 영화를 주무르는 pta의 능력에 대한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슬픔의 삼각형>을 보고 나서도 이와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슬픔의 삼각형>에서 규모가 느껴지는 지점은 영화보단 시나리오 단계이다. 어쩌면 이야기보단 주제가 앞서는 성향의 감독이 자신이 말하려는 주제를 이야기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하는, 완전한 평야에서부터 시작해야하는 단계의 작업이다. 그러나 <매그놀리아>는 감독이 인터뷰에서 이야기하였듯이 현재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너무 많은 일들, 과잉으로 치닫은 자신의 삶 속에서 이야기를 차용한 다음 근원적인 결핍을 토해낸 영화처럼 보인다. 따라서 영화에서 플롯을 만드는 과정이 <슬픔의 삼각형>은 지극히 수학적인 작업과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반면, <매그놀리아>는 더 방대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수월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소름이 끼쳤던 부분은 <슬픔의 삼각형>처럼 시나리오가 아닌 영화의 쇼트 한개 한개이다. 다중적인 플롯을 가진만큼, 플롯의 배치나 정보를 얼만큼 언제 드러낼지가 테크닉의 가장 큰 관건이다. 그런데 영화는 플롯 전환을 인물당 시퀀스별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한 쇼트, 한 씬의 분량으로 자유자재하게 주무른다. 영화의 후반부에 모든 인물들이 사운드트랙을 따라부르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인물이 쇼트별로 전환된다. 심지어 픽스샷도 아니고, 인물들이 가사에 따라 입을 움직인다. 3시간의 영화 속에서 어떻게 이런 쇼트 하나하나들을 통제하고 알맞게 배치한단 말인가? 물론 커버리지샷을 많이 찍겠지만, 프리 단계에서 이것들을 미리 구상한다고 생각만 해도 정말 끔찍하다. 그저.. 이런 모든 것들을 통제해서 결론적으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정말 인간의 능력처럼 보이지가 않는다.

또 한가지 주목할 점은 트랜지션이다. 이렇게 큰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들은 어떤 형식으로 이야기를 깔끔하게 만드냐가 관건인데, <매그놀리아>는 별것 아닌 듯 보이지만 트랜지션이 아주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관객이 영화를 이해하는 단순한 작용에서 말이다. 트랜지션의 방법으로는 1. 내용을 일치시킨다 2. 매치컷 이 있는데, 내용을 일치시키는 것은 영화에서 쓰이는, 중요한 내용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단어 하나로 이루어진다. 예시로 린다->필의 장면전환이 있는데, 린다가 자신의 변호사와 이야기하다가 누군가에 대한 이름을 묻는다. 그 순간 필의 이야기로 넘어가고, 필은 전화로 프랭크의 이름을 부른다. 이를 통해 영화는 단순간에 관객이 집중해야 할 정보를 드러냄으로써 이야기를 집약시킨다. 매치컷 또한 분리된 플롯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보일 수 있게끔 하며, 이러한 스타일들이 모든 인물들이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내용과도 일치된다.

솔직히 나는 영화의 인물들처럼 큰 상처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그들의 모습을 나로 대상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한발짝 떨어져 관조하게 되었다. 그러나 상처의 크기나 유형, 그로 인한 언변은 다를지라도 사랑의 결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조금이나마 일치하는 듯 했다. 꼭 부모나 사람에 의한 사랑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나는 내 인생에서 사랑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내 삶이 요구하는 너무 많은 것들을 나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고, 영화를 하고 나서야 모든 것이 일률적으로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내 삶이 외치는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나서야 나는 영화에서 내 결핍을 인지했다. 그렇게 나는 <매그놀리아>에서 내 결핍을 발견하고 나서야 영화가 말하는 사람에 의한, 특히 부모와 가족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사랑의 결핍은 어떤 형태로든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나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현재는 연인에 대한 사랑을 갈구하고 있으며 이 사랑이 채워질지언정 다른 형태의 사랑이 내 인생에서 결핍되어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