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마이 카> 2021, 하마구치 류스케
영화 안에서 또 다른 영화(연극)가 진행된다. 이 연극을 빌려 인물들(이라고 하기엔 가후쿠가 거의 전부지만)의 상황을 말하는 연출이 가장 눈에 띄었다. 가후쿠의 차에서 나오는 녹음 테이프의 내용이 그 당시의 가후쿠의 상황과 항상 맞아떨어진다. “20년간 남의 자리에 앉아 있었지..”로 시작해 그 절정은 아내가 죽고 난 뒤 “네가 두려운 것은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그걸 모르는 것이다”라는 대사이다. 그리고 드라이버 미사키를 만나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 전부터 테이프에는 엄마에 대한 내요이 나오며 넌지시 앞으로의 전개를 드러낸다. 하지만 문제는 앞에서 말했듯이 테이프의 내용은 카후쿠에 대한 것이 전부인 것 처럼 영화의 모든 것이 가후쿠를 향해서만 작용한다는 것이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당연한 것을 문제삼는 이유는 인물들에 대한 감정적 이입과 공감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비판할만한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다기 보다는 정말 말 그래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관객은 영화를 보며 감정이 생겨나기 마련이고 그 감정은 주인공이 아니더라도(거의 주인공이지만) 인물을 통해 투영되며 그래서 인물이 겪는 사건과 상황에 대해 관객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가후쿠는 영화의 겪는 변화는 점진적인 것이 아니라 극적인 변화이다. 그리고 그 변화로 다가가는 과정을 인지하고, 인물이 주체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겪는다. 가후쿠는 본인의 변화를 인지하지 않고, 영화가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관객은 그의 감정에 이입할 수 없다. 그럼 여기서 도움을 주는 것은 그 변화를 겪게 해주는 다른 인물 미사키다. 하지만 영화는 미사키의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두 인물이 가까워지는 순간인 차에서 담배를 피는 장면에 머리로 ‘아 두 인물이 가까워지는 순간이구나’ 라고 인지만 할 뿐 그 씬 안에서 느껴지는 감상이 없는 것이다. 가후쿠가 결국 남을 알기 위해서는 자신을 알아야 하고, 경청의 자세가 닫혀 있었다는 전제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의 형성과 그 내용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후쿠를 중심으로 모든 인물들이 그저 수학적으로 도출되듯이 기능적으로 존재한다. 인물의 설계가 평면적이라거나, 부실하다는것과는 사뭇 다르다. 인과관계의 계산으로 인물의 서사를 만들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 계산이 영화의 전체 서사에 조화되지 않고 눈에 띄게 작위적으로 느껴질 뿐이다. 타카츠키가 폭행을 한 이유(대상)이 가후쿠와 자신을 사진찍던 남자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그 사진찍는 남자를 계산적으로 삽입한 것을 인지한 순간 정말 황당할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