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태양은 가득히> 1960, 르네 클레망

Heeji 2022. 12. 2. 02:55

일단.. 오프닝 시퀀스가 너무너무 난잡했다. 시놉을 미리 읽지 않았으면 내러티브를 이해하지 못했을 정도로. 오프닝 시퀀스에는 톰과 필립이 장인을 흉내내며 여자와 방탕하게 놀아나는 씬이 있다. 이 씬이 도무지 어떠한 기능과 정서를 가져오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저 귀걸이 하나를 위해 집어넣은 씬이라면 너무나 기능적으로만 쓰여지는 것이고 이것을 제외하고 봐도 둘의 관계성을 조명한다거나 사건의 원인이나 인물의 욕망을 설정하지도 않는다. 톰과 필립의 관계성은 오프닝 씬, 마르쥬가 처음 등장하는 씬, 배 위에서 톰이 죽을뻔한 씬에서 강하게 드러난다. 특히 마르쥬가 처음 등장하는 씬, 키스를 하는 마르쥬와 필립의 옆에서 광대처럼 기타나 치는 톰의 모습에서 상하관계라는 둘의 관계성이 가장 강하게 드러난다. 다만 의문이 드는 점 두가지는 배 위에서의 사건(필립의 장난에 의해 톰이 죽을뻔한)을 통해서까지 반복적으로 이미 앞에서 충분히 드러난 관계성을 또 조명해야 하는가? 와 톰의 욕망이 둘의 관계성과 인과관계를 맺는 듯 아닌 듯 모호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첫 번째 질문은 오프닝 시퀀스와 동일선상의 문제이다. 필립의 장난에 의해 톰이 죽을뻔한 이 사건이 무슨 기능을 하는지 말이다. 둘의 상하관계를 뚜렷히 보여주기는 하지만 이미 앞에서 충분히 드러났을 뿐더러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만약 이 사건으로 톰이 필립에게 복수심을 품었다기엔 그 점을 전혀 강조하지 않을 뿐더러 톰은 단순히 돈때문에 움직이는 인물처럼 보인다.
두 번째 의문, 톰은 무엇에 의해 움직이는 인물인가? 나는 톰이라는 캐릭터의 내면과 욕망을 전혀 마주할 수 없었다. 필립을 동경해 그가 되고싶은건지, 단순히 돈에 눈이 먼 건지, 마르쥬를 빼앗고 싶었던 건지 말이다. 오프닝시퀀스에서 이것이 드러나야 하는데 앞서 말했던대로 오프닝 시퀀스는 관계성을 보여주는 기능만을 할 뿐이다. 덕분에 알랭 들롱이 연기했음에도 인물에게 그 어떤 매력도 느낄 수 없었다. 인물의 감정과 행동에 내가 자발적으로 이입하게 만들지 않았으며 그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목각인형처럼 느껴졌을 뿐이다.
딱 한가지 좋았던 점은 상하관계였던 톰과 필립의 관계에서 톰이 필립의 모습이 되며 선상에 있는 필립의 위치로 올라섰다는 것.
나 따위가 영화에게 악담을 퍼붓는 짓을 하고 싶진 않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영화를 왜 봐야 하는가?(별로인 것이랑은 별개의 문제이다) 시비를 거는 것이 아니라 정말 ‘왜?’ 봐야 하는가? 이 영화는 내 삶에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이의 삶을 보여주며, 나와 어떤 점접을 갖는가? 영화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무엇이며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고다르의 경멸을 보며 답을 찾을 수 없는 끌림을 마주하고 그의 도발을 느꼈다. (물론 경멸은 관객의 자발적 참여를 의도하는 장치를 대놓고 설치한 것이지만) 나를 참여하게 만드는 영화를 만나야 한다. 나에게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고, 나를 도발하고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영화 말이다. 그런 영화를 마주하였을 때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질문을 피하지 않는 연습이 필요할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