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비리디아나> 1961, 루이스 부뉴엘
Heeji
2022. 12. 6. 01:49
루이스 부뉴엘 영화의 구조는 매우 현대적으로 느껴지는데, 고전적 내러티브임에도 인물이 내면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박찬욱 영화가 떠오르기도 한다. <비리디아나>는 인물을 이동시키지 않고 한순간에 내면을 무너뜨리는데, 주변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그녀의 내면이 자세히 비추어진다. 이런 효과는 비리디아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해 마지막 그녀의 파멸을 더욱 처량하고 비극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고전영화와 현대영화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차이가 있었는데 부뉴엘의 영화를 통해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고전영화를 볼 때, 완전히 작가주의의 성격을 띄지 않는 이상 나의 삶을 투영해서 보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부뉴엘은 명확하고 두드러지는 주제 속에서도 오히려 그 주제의 존재가 가려질 만큼 뛰어난 형식으로 표현해내었다. 이는 나의 삶을 들추면서도 주제가 형식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또한 살펴보게 하였다.
비리디아나의 주인공은 비리디아나가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첫번째 플롯인 삼촌과의 이야기도 죽음으로 인해 끝나고, 그 뒤의 인물들도 번갈아가며 플롯의 분량을 차지한다. 어찌되었건 비리디아나와 관련된 플롯의 진행이지만 그녀가 없는, 다른 인물들의 행동을 보여주는 시퀀스가 상당수다. 다른 인물들의 행동은 비리디아나가 초래한 결과를 보여주기 위함이고 비리디아나의 감정은 마지막 씬에서만 짧게 다룰 뿐이다. 결국은 그녀의 감정보다는 논제거리를 제시하는 느낌이 든다. 정말 관객에게 보여주는 형식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