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본즈 앤 올> 2022, 루카 구아다니노

Heeji 2022. 12. 12. 03:42

1.샷의 미학의 이유
영화의 첫 인상은 잉여의 샷이나 기능적인 샷도 미학적인 구도를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징으로는 주로 픽스를 고집하며(몽타주가 적고 샷의 시간이 길다) 인물 클로즈업을 잘 잡지 않는다. 미디엄 클로즈업조차도 거의 없고 ots와 같은 일반적인 문법이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이런 특이한 형식들이 미장센적으로 잘 풀어진 것이 아니라 거슬린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오프닝 시퀀스에서 매런이 식인을 하고 돌아온 씬 중의 샷인데, 문을 바라보고 픽스된 샷에서 문 사이로 매런이 보였다가 아버지가 통과하는 샷이었다. 문 사이로 매런이 보이는 샷이 미학적이라고 느껴지는 순간 아버지가 등장해 카메라로 다가오는 순간 엄청나게 이질감이 느껴졌다. 이처럼 가시적으로 미학적인 ‘이미지’가 움직임이 있는 ‘샷’의 미학을 방해한다. 진정한 샷의 미학은 포토제니, 즉 사진으로써의 미학과 움직임이 더해졌을 때 그것이 깨져서는 안된다. 미장센적인 효과까지 더해지면 좋겠지만 사소한 샷 하나까지 그럴 필요도 가능하지도 않으니..
원래는 중요한 샷이 아니더라도 굳이 구도를 이쁘게 잡지 않을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아름다움에는 이유가 필요하듯이, 홍상수가 불필요한 구도를 잡지 않듯이 할 필요가 있나 말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이쁜 구도에 미장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이질감이 드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구도 자체는 이쁘게 보여도 연결성이 떨어져 몰입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느린 컷편집으로 만들면 안돼는 내용이여서 그런걸지도..) 그러나 <퍼시픽션>을 보고 그냥 못찍은거구나 깨달았다. 물론 퍼시픽션은 렌즈+후반의 힘인 것 같긴 하지만 영화 내내 동일한 이미지를 제공하고 픽스샷에서도 인물의 움직임을 담아낼 수 있는 샷 사이즈를 추구한다. 그렇지 않을때는 컷편집을 넣고.

2.정서를 일으킬때의 성급함
이 문제가 가장 크게 드러난 지점은 티모시가 식인한 사람의 집에 들어가 어느 밴드의 노래를 틀고 춤을 추는 장면이다. 나는 이 씬이 매우 의도적으로 관객들의 정서를 건드리려 한다는 것을 느꼈다. 다른 말로는 인물이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문제를 <드라이브 마이 카>의 차 안 담배 씬에서도 느꼈는데 두 인물의 소통이 진실되어 보이지 않고 그저 ‘진실되어 보이기 위해’ 같이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설정을 넣은 느낌이다. 그저 스타 배우가 퇴폐적인 모습으로 락밴드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 의도가 너무나 다분히 보이지 않는가.

3.관계의 교류
2에서도 말했듯이 무엇보다 인물들이 진짜처럼 보이지 않는다. 솔직히 매런과 티모시가 어떤 이유로 서로에게 그렇게 끌렸는지도 설득당하지 못했고(거의 운명적 사랑의 수준으로도 보이는데) 매런이 티모시를 떠난 뒤에 다시 돌아올 때에는 진짜 전개를 위해 인물을 조종시킨다고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4. 프레임 밖의 인물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매런은 티모시를 먹으며 결국 식인을 수용하고 둘은 하나가 된다. 이런 내용 하나를 위해 정말 비급영화의 냄새가 나도록 설리를 다시 등장시켜 매런을 죽이려 하고.. 티모시 이유없이 죽고 이러는게 진심 개x같았다. 설리는 그저 매런에게 식인에 대해 알려주는 인물1이 되거나 그 뒤에도 두번이나 등장하려면 다른 인물들과 소통했어야만 한다. 이런 소통의 결여는 설리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물들 사이에서 결여되었다. 마지막에 티모시가 죽고 매런이 그를 먹는 것이 아무리 메타포적인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표현하는 형식이 구린데 어쩔거냔 말이다.. 마치 <썸머 필름을 타고!>의 엔딩처럼 말이다. 그 뒤 잉여의 샷으로 비춰지는 아련한 모습의 매런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럼 영화가 끝나고 난 뒤 매런은 어떻게 살아가지? 자신이 기대었던 티모시가 없는데 말이다. 문제는 여기서 드러난다. 매런은 티모시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인물이 된다. 영화는 매런 개인의 성장을 다룰 듯 하면서 결국 티모시와의 결합으로 흘러간다. 그저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인물에게 생명이 아닌 기능만을 부여했다. 영화 밖의 매런이 그려지지 않는 이유는 진정으로 살아숨쉬는 캐릭터가 아니어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