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 1961, 알렝 레네
Heeji
2023. 1. 2. 01:43
영화는 메인 플롯을 아주 뒤에나 전개시킨다. 오프닝의 나레이션 또한 필요 이상으로 길게 지속되기도 한다. 왜 그럴까? 특히 오프닝의 나레이션에 대해서 큰 의문을 가졌다. 반복되는 내용의 나레이션과 건물을 비추는 잉여의 샷은 정보를 제공하기보다는 어떠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처음에는 주연처럼 느껴졌던 나레이션의 남자가 그저 반복되는 로봇같기도 하고 나레이션은 기도문이나 설화처럼 들리기도 한다. 길게 반복되는 나레이션은 영화 전체적으로 이어지는 남자의 나레이션에 이질감을 들지 않게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엔딩에서 드러나는 죽음과도 연관있어 보인다. 여자가 죽은 사람인지, 남자가 죽은 사람인지 모호하게 드러나듯이 영화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 또한 모호 그 자체로 정립한다. 의상과 공간의 측면에서 문법을 파괴하며 인물이 어느 위치, 어느 시간에 있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이런 연출은 두 남녀가 진짜 만났던 것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한층 더 조명한다.
다만 계속되는 반복(남자의 어필과 여자의 부정) 속에서 변화라고 보여지는 것이 없었다. 시공간을 뒤트는 갖가지 방법을 보여주지만 내용적으로는 발전된 것이 없기에 뭘 계속 보고있나.. 하는 느낌(물론 후반부에 변화가 조금씩 나타나긴 한다)
누벨바그의 시발점을 터뜨린 사람이 그 물결이 한창 요동치던 시기에 그와는 사뭇 다른 아주 정제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고 개인의 세상이 완고하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