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퍼스트 슬램덩크> 2022, 이노우에 다케히코
강백호와 서태웅같이 내가 아는 주요 인물이 아닌 태섭의 서사를 다룬다. 태섭의 플롯 안에서 대만과 치수의 과거(결점)도 조금씩 드러나고, 각 인물들의 결점에 대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기 안에서 풀어낸다. 나는 원작을 보지 않았기에 강백호와 서태웅의 서사는 다뤄지지 않는 것이 의아했다. (나중에야 원작에서 비중이 적던 캐릭터들의 서사를 주로 다룬 것이라는 걸 알았다.)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코트, 경기 안에서 그들의 인생이 그대로 그러나는 방식이 스포츠물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잘 다뤄 감동적이었다. 다만 백호와 태웅이 후반부에 괘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그들의 내적 변화를 깊게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초짜이던 백호가 갑자기 활약하고, 부상을 뒤로하고 순간의 승리를 누리려 한 이유에 다른 인물들처럼 서사나 백호의 성격이 더 돋보였으면 했다. 태웅 또한 마찬가지다. 딱봐도 과묵하고 넉살없는 태웅의 이미지를 통해 그동안 패스하지 않던 태웅이 패스를 했다는 것은 변화를 맞이했다는게 느껴진다. 다만 영화에서 태웅의 이야기는 이것 한가지밖에 없기 때문에..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난 지금입니다.” 라는 유명한 명대사가 나온다. 이 대사와 백호의 선택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봤다. 많은 스포츠물에서 주인공 선수가 부상투혼을 해가며 무리하게 경기하는 설정이 나온다. 이런 클리셰들을 볼때마다 현실성없고 멍청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운동을 했던 시절 나의 방식과 정 반대였기 때문이다. 백호의 대사 전 영감님의 말대로 선수의 장기적인 생명을 위해서는 안정을 취하는 것이 좋다. 나도 이처럼 항상 안정된 선택을 해왔다. 부상을 짓누르며 눈앞의 순간에 투자하는 것은 오히려 그릇된 선택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백호의 저 대사를 듣고 처음으로 내 선택이 흔들렸다. 실없는 소리만 하고 장난스런 성격의 백호에게는 긴 미래를 계산하는 것 보다 동료들과 현재의 뜨거운 순간과 승리를 누리는 것이 더 큰 경험일 것이다. 나는 이때까지 모두 나같은 사람만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인생의 선택지에서 답이 없듯이, 그러한 순간의 선택지에서도 답은 없다. 그래서 나는 백호의 선택이 누구보다도 백호답고, 백호를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백호가 아닌 다른 인물, 혹은 나였다면 이 선택은 의미가 없다.
태섭의 대사 중에서도 기억나는 것이 있다. “형이 없는 세상에서 제가 기댈 수 있는 건 농구뿐이었어요.” 다시끔 운동선수들이 자신의 종목에 대해 어떤 애정, 아니 애정이라고 하기도 벅차다. 어떤 고유함을 부여하고 있는지를 상기시키는 대사였다. 태섭의 서사에서 마음에 들었던 점은 농구를 향한 태섭이의 마음이 가족과 그렇게 크게 연관되어있다 않다는 점이었다. 물론 형과 농구가 동일시되지만 태섭이의 농구에 대한 마음은 단순히 ‘형’ 그 전부로는 보이지 않는다. 형의 대체제이기도 하면서 형 없이 자신만의 세상을 꾸릴 수 있는 세상 아니었을까. 스포츠 분야가 아니더라도 동일한 존재가 각각의 사람들에게 다른 의미를 지닌다는게 언제 생각해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단순한 애정이라기보다 이 ‘소중함’은 영화를 하는 지금보다 운동을 하던 때에 더 크게 느꼈던 것 같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태섭이처럼 자신만의 의미를 지닌 무언가를 찾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