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el> 1976, Heinz Emigholz
영화는 세개의 이미지로 나누어진다. 길거리, 식사하는 모습, 두 장면 사이사이에 배치되는 차도. 각 이미지마다 완전히 다른 편집 스타일을 가지는 것이 눈에 띈다. 첫번째 시퀀스로 등장하는 길거리는 1초에 15프레임 정도로 보이는 슬로우모션 비디오다. 그저 길에서 걷는 두 남자의 뒷모습만이 보이는데, 그 모습(움직임)이 프레임수가 그렇게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 입체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배경과 피사체 때문일수도, 필름에 특별한 효과를 주었을수도..) 카메라는 걷고 있는 두 남성을 따라가고있는 위치이고, 슬로우모션임에도 자연스러운 느낌 떄문에 마치 내가 그 공간을 걷고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더군다나 화면의 노이즈나 약간 누렇게 바랜 색감, 흑백 필름이라는 점이 더해져 무언의 추억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과거의 경험을 다시 경험하는듯한 생생한 추억보다는 추억 그 자체로 인식되는 이미지이다. 이 길거리의 이미지 뒤에는 매우 어두운 길거리(단순히 어두운 것이 아니라 색 반전같은 특수효과가 있다)가 잠깐 나오고 식사 장면이 나온다. 식탁 위의 음식이 다른 두 시간이 평행편집된다. 식탁 위의 음식 빼고는 모든 것이 동일하기 때문에(구도, 인물, 명암 등) 처음에는 같은 날인데 시간이 흐른 것인지, 다른 시간인지조차 인식이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두 시간대가 전환되는 주기가 갈수록 빨라지먄서 완전히 다른 시간대의 장면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장면이 전환되는 주기는 점점 빨라져 나중에는 두 장면이 하나처럼 보이게 된다. 벽과 식탁과 같은 구도가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에 화면에는 그저 사람이 4명인 것처럼 보인다. 두 영상 모두 사람이 앉아있다면 하나로 보이다가도 다른 행동을 하거나 다른 위치에 있으면 두 사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신기한 형식이 펼쳐진다. 전환 주기가 빠르지 않을 때에는 이런 평행편집의 방식이 진부하다고 생각했지만 마지막에 빠르게 교차되는 순간에 새로운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는 정말 감탄했다. 마지막 순간에도 단순히 두개의 이미지를 빠르게 교차한다는 편집의 방식 자체는 진부하지만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이미지가 정말 멋있었다.
<Hotel>은 필름의 노이즈라던가 완전히 어두운 효과를 준 화면, 심히 불안정하게 느껴지는 필트 앵글 등의 요소들 때문에 보여지는 풍경(이미지)이 정직하게 인식되지 못하고 많은 방해요소들과 미스테리로 가려진 느낌이 든다. 초고화질의 디지털 카메라보다 필름카메라가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어딘가 흐릿한 노이즈와 픽셀들 때문에 이미지가 미스테리하게 느껴지고, 잉여의 부분들이 허구의 노스텔지어처럼 머릿속에서 미화되어서가 아닐까? 나 또한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런 감정이나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던 시기가 아련하고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실험영화들은 갖가지 형식으로 이미지를 인식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는 것 같다. 필름의 물질적 작용과 이미지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