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롤라 런> 1998, 톰 튀크베어

Heeji 2023. 4. 23. 16:28

영화는 별다른 설명 없이 롤라와 마니가 처한 급박한 상황 속으로 관객을 이끈다. 롤라는 마니를 위해 돈을 구할 방법으로 은행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부탁을 한다. 하지만 롤라와 아버지의 사이는 그닥 좋아보이지 않고, 롤라의 부탁으로 둘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져버리기까지 한다. 돈을 구하려는 롤라의 시도가 성공적이건 실패적이건, 가족까지 희생하고 정말 힘을 다해 달리면서까지 마니의 부탁을 들어주려는 이유가 공감되지 않았다. 롤라나 둘의 관계에 대한 일말의 설명조차 없었기 때문에. 다르게 말하자면 영화에서 삶의 유사성을 찾을 없었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면 볼수록 구조나 완벽함을 따지기보단 삶과 유사성을 가진 영화에게 끌리게 된다. 이전에는 주제가 아닌 형식적인 부분을 중요시 여겼지만 요즈음은 형식이 서투르더라도 내용적인 측면에서 나와 비슷한 영화에 끌릴 때가 있기도 하다. 다만 반대로 삶과 전혀 유사하지 않고, 유사를 제외하고서도 깊은 내면이 다뤄지지 않는 영화에게 끌리기도 한다. 이것을 처음 느낀 영화가 후지타 토시야의 <수라설희>이다. <수라설희>에서 좋다고 느꼈던 대부분의 요소들은 내용적 측면이 아닌 형식적 측면들이다. 70년에 영화라고 없는 전위적인 몽타주(복수 대상과 설희의 클로즈업 몽타주), 칼에서 떨어지는 핏방울 클로즈업과 침묵 속의 매우 작은 핏방울 소리 하나로 프레임 속의 거대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등등. 영화의 기술적 요소들에 이토록 감탄하며 경험이 없었고, <수라설희> 통해 영화를 감상하는 다른 관점을 알게 것이다. 그러하여 <롤라 >에서도 삶의 유사성을 찾으려고 애쓰기보다 영화의 다채로운 표현방식에 집중하여 감상하였다. <롤라 >에서 제일 먼저, 가장 눈에 띄는 것이라고 하면 단연 롤라의 헤어스타일일것이다. 사뭇 미치광이처럼 보이는 롤라의 헤어스타일과 그에 걸맞은 복장은 정상적 사고에 의한 판단으로 보이지 않는 롤라의 선택에 약간의 설득력을 준다. 지난 수업에서 프러덕션 디자인의 개념에 대한 인상 깊었던 부분이프러덕션 디자인은 영화 세계를 구현함으로써 관객이 영화 세계를 실제하는 하나의 세계처럼 몰입하게 하고, 주제가 더욱 전달될 있도록 한다.’ 라는 내용이었다. 앞서 말한롤라의 헤어스타일로 인해 비정상적 사고의 선택이 합리화된다.’ 또한 프러덕션 디자인의 능력으로 관객이 영화의 세계에 설득당하고,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의 건물이나 거리의 배경, 인물들(롤라와 마니) 스타일을 보며 대니 보일의 <트레인스포팅> 떠오르기도 하였다. 소위 양아치(?)라고 말할 있는 젊은이들이 하는 스타일링, 그들이 생활하는 골목같은 삭막한 거리들이 영화의 공통점처럼 보였다. 또한 롤라의 두번째 선택에서, 앞을 뛰어가다 차에 치이고 운전자와 말을 하는 씬을 보고선 <트레인스포팅> 오프닝 (이완 맥그리거가 뛰어가다 차에 치이는) <롤라 > 씬을 오마주한 것인가? 라는 생각이 정도로 영화의 세계가 유사하게 보였다. 세계가 유사해 보이는 이유는 인물들의 스타일링이나 길거리 배경과 같은 프러덕션 디자인의 역할도 크지만 사운드트랙과 빠른 편집 스타일의 역할도 매우 크다. 특히 사운드트랙은 엄청난 유사성을 보인다. 어느 정도냐 하면 스포티파이(음악 감상 플랫폼) ‘run lola run soundtrack’ 검색하면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롤라 > 사운드트랙과 유사한 플레이리스트가 나오는데, 속에는 <트레인스포팅> 사운드트랙, 사운드트랙 앨범의 다른 수록곡, 아티스트의 다른 앨범 노래 등등 매우 연관되는 지점이 많다. IDM장르의 사운드트랙은 <롤라 > 세계를 구현하는데 프로덕션 디자인만큼 역할을 했다. 속도가 매우 빠르고 샷사이즈가 마구 변하는 편집 스타일이 이런 IDM 장르의 사운드트랙과 어우러지며 인물의 감정에 이입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마니와 롤라가 전화를 하는 오프닝 시퀀스에서 영화의 편집은 오히려 관객이 이미지나 인물의 표정을 인식하기 어려울 정도로 컷편집 속도가 빠르며 정신없이 점프컷을 해댄다. 이런 편집을 보고있노라니 정말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약간의 멘붕 상태가 오며 마니와 롤라가 느끼는 불안감을 그대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롤라 > 프러덕션 디자인과 사운드트랙, 편집 스타일은 내용적인 측면(서사적 설명) 대신해 관객을 세계로 이끌었다.

학교 과제로 인한 감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