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춘몽> 2016, 장률

Heeji 2022. 11. 17. 18:50

마지막 컬러 전환을 통해 흑백의 영화가 꿈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영화는 예리, 익준, 정범, 종범 중 누구의 꿈일까? 영화의 제목은 <춘몽>이다. 덧없는 삶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예리의 꿈이라는 의견, 세 남자의 꿈이라는 의견 등 누구의 꿈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는 장률 감독의 말에 걸맞게 많은 해석이 존재한다. 나는 흑백 부분의 꿈이 잠을 자면서 꾸는 진짜 꿈이 아닌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 이라고 생각한다. 예리는 중국을 떠나 엄마와 바람을 폈다는 아빠가 있는 한국으로 왔지만 아빠는 식물인간의 상태이다. <북간도>라는 책을 읽고, 아빠의 휠체어가 떨어지는 꿈을 꾸고,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이 이상형이라는 것을 통해 아픈 아빠가 있는 현실을 벗어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걸 알 수 있다. 그에 걸맞게 예리의 주점 이름도 ‘고향주막’이다. 이런 예리의 ‘꿈’은 영화관과 유연석을 통해 나타나고 사라진다. 익준의 말대로 영화는 그저 밥을 먹는 지루하고 일상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예리는 영화를 통해 그런 일상을 되찾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익준에 의해 영화관에서 쫓겨나고 마지막에 만난 유연석 -예리의 이상형인 몸도 마음도 건강한 남자- 마저 예리가 춤을 추자 문을 박차고 나가버린다. 이렇게 예리의 ‘춘몽’이 -말 그대로 덧없는 삶- 그려진다. 그렇다면 세 남자의 꿈은 무엇일까? 익준은 고아로 부모에 대한 부재를 느낀다. 그래서 “에휴, 아빠나 찾으러 가야겠다.” 라는 대사와 예리의 아버지를 씻겨주는 장면이 나온다. 정범은 공장에서 떼인 돈을 세 친구에 의해 -특히 종범. 종범이 사장의 방에 들어가자마자 사장은 돈을 주겠다며 기겁한다- 극적으로 돌려받게 된다. ‘극적’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종범이 유일하게 꿈이 나오지 않는 인물이지만 그의 꿈은 예리 그 자체이다. 종범은 세 남자 중에서 가장 예리에게 관심을 보인다. 마지막 컬러 전환과 예리의 죽음, 예리 아버지의 걸음으로 세 남자의 꿈이 부숴지는 것이다. 이 영화에는 일절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흑백임에도 대비가 적고 약간의 황색 필터를 통해 따듯한 느낌이 전해진다. 장률 감독은 ‘부귀영화’을 그리며 마치 할리우드처럼 삶을 왜곡시키는 것 보다 ‘춘몽’을 그리며 리얼리즘의 양식으로 덧없을 많은 사람들의 삶을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