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같은 속옷을 입은 두 여자> 2022, 김세인

Heeji 2022. 11. 19. 00:48

오프닝 시퀀스의 “너는 내 안좋은 것만 가져갔냐”라는 대사가 영화에 대한 기대를 높혔다. 명백히 수경의 잘못임이 드러나는 상황에서 어떤 대사로 대처할지를 궁금해하고있었는데 이렇게 보편적이면서도 상황의 긴장감과 캐릭터의 성격을 놓치지 않는 대사라니! 조금 뒤에 이어지는 훌라후프 씬도 영화 전체를 이어가는 긴장감을 표현하는데에 있어 매우 탁월했다. 중요한 점은 매우 ‘보편적인 소재’로 입체적인 상황과 인물을 그려낸다는 것이다. 이정을 표현하는데에 있어 마냥 연민을 택하는 것이 아닌 사회성이 결여된 모습을 그려내 그녀의 상처에 착잡함을 더해준다. 이정이 직장에서 취하는 사회성이 결여된 모습은 꼭 그녀와 유사한 환경에서만의 사람이 아니라 어떠한 원인으로든 우리가 많이 봐왔고, 겪어왔던 한 사람의 모습이다.
이 영화가 초점을 잡는 것은 인물의 욕망보다는 ‘원인’이다. 이 원인은 직접적인 대사를 통해 나타나기도 하며 매 장면(씬)이 인물이 스스로의 변화를 자각하는 것에 집중하면서 자연스레 근원적인 ‘원인’ 이라는 것에 귀결되게 한다. 또한 이진과 수경의 플롯을 아예 이중플롯으로 구별시킴으로써 두 인물의 대치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만든다. 이렇게 플롯을 통해 두 인물을 구조적으로 평행되게 나아가게 하고, 끝까지 어떠한 사건을 통해 결합시킨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원인’이라는 교집합을 통해 완벽히 동일시시킨다음 급격하게 완벽히 분리한다.
다만 후반으로 갈수록 두드러지는 장면에서의 외적 내러티브 표현이 아닌 내적 변화 표현은 서사의 연결성은 파괴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보다 인물 내면 깊이로 들어갈 수 있게 되지만 갑자기 내용에서 지워진 재판 사건처럼 인물이 사건과 상호작용하고 있지 않게 된다. 그러다보니 매 씬마다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정의 사회성이 결여된 모습, 대비된 측면을 그려냄으로써 입체적으로 만든 것 처럼 수경도 엔딩에서 의도가 아닌 자동차의 고장, 친구의 남편에게 꼬리치지 않았다는 선한 측면이 드러나며 서사의 균형을 잡는다. 하지만 이는 서사라기보다는 이야기의 맺음으로써 기능하고 있다. 수영장에 놀러간 수경과 같은 씬을 통해 그녀의 폭력적인 모습과 대비되는 모습도 보여주는데 이는 이진의 경우처럼 내면이 표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러닝타임을 잡아먹는 잉여의 샷으로 느껴질 뿐이다.
연출이나 구조와 별개로 캐릭터 설정이 식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어떤 여성영화에서도 이와 유사한 캐릭터를 본 적이 없다는 거 떠올렸다. 식상한 설정이 아니라 내가 그런 이들을 너무 많이 봐온 것이다. 나는 스스로 보편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지내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겪은 주변사람들이 보편적인 상황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만 이 부분에서 착각이 일어난 것 같다. 가족이라는 존재가 타볼라 라사의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나는 너무나도 가까이 봐왔다. 그런 내가 어색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영화는 고증이라고 부를 정도로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