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번지 점프를 하다> 2000, 김대승

Heeji 2022. 11. 17. 18:34

이병헌의 연기가 아니었다면 이토록 인물에게 이입할 수 있었을까. 영화는 끝으로 갈수록 환타지적인 내러티브가 된다. 이때 인물들의 감정과 행동에 관객이 얼만큼 공감하고 이입하느냐에 따라 장르적 특징이자 단점이 될 수 있는 떨어지는 개연성이 상쇄된다. 이런 점에서 이병헌의 연기는 연출(감독의)에서 표현되지 않는 사소한 것까지 연상케 한다. 극적인 연출을 위해 태희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을 뒤에 배치했겠지만, 알기 전까지는 찝찝한 의문이 드는 점은 있다. (전체적인 인우와 태희의 플롯 배치 자체가 이런 매끄럽지 않은 형태를 띈다.) 정말 아쉽고 화났던 것은 시대적이라고도 할 수 없다. 여성혐오적, 호모포비아적 대사와 연출이 단순히 윤리적 측면에서 잘못된 것 만이 아닌 영화 자체의 완성도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로맨스 영화는 시적이고 문학적인 대사 하나로 관객을 울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 영화에서도 지구상에 꽃힌 바늘.., 태희야 난 널 알아볼 수 있는데.. 등 명대사들이 있다. 대사 한마디와 분위기를 조성시키는 연출 등 사소한 것들로 영화의 밀도를 채워나갈 수 있는데 이런 요소들이 관객이 인물과 상황에 이입하려는 것을 막아버린다. 그저 내러티브만 훌륭했던 영화가 아니라 왈츠와 2인3각, 라이터, 벨소리 등 큰 메타포들을 자연스럽고도 로맨틱하게 연출했기에 영화가 끝나도 더 해석할 여지를 주는(씹는맛이 있는..) 사소한 연출의 부재가 더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