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복수는 나의 것> 2002, 박찬욱

Heeji 2023. 6. 23. 01:30

박찬욱의 강연을 들으러 가기 전에 기념삼아 미뤄왔던 필모들을 봤다. <복수는 나의 것>은 내 예상과도 너무 달랐다. 소재와 달리 매우 미니멀했으며, 신인 감독의 그득한 욕망이 보이기보단 영화연출에 대한 시도와 열정이 느껴졌다. 특히 연출(기술적인 면)에 대한 감상은 오히려 후기작들을 전부 감상하고 나서 <복수는 나의 것>을 감상했기에 다르게 다가왔다. <올드보이>의 지하철 개미 씬, <박쥐>의 물에 빠져 죽은 신하균이 잠자는 김옥빈을 짓누르는 씬과 같이 약간의 유머가 담긴 초현실적인 장치를 통해 인물의 심리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박찬욱 특유의 연출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었구나 알 수 있었다. 이런 초현실적인 표현법을 더불어, <복수는 나의 것>에는 박찬욱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마치 <매트릭스> 1처럼 한 세계의 규칙과 특성을 모두 드러내는 듯한.. 뒤의 영화들이 <복수는 나의 것>을 블로우업 시켜 만들어진 느낌조차 들었다. (<친절한 금자씨>와는 겹치는 요소가 상당 부분 있다.) 또한 광곽을 사용한 이미지, 그 자체로는 좋지만 방식이 많은 나머지 다소 난잡하게 느껴지는 연출법 등 한 필름메이커가 이러한 연출을 사용해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그 진심이 스크린 너머로 너무나 잘 보였다. 며칠 전 <매그놀리아>를 보며 느꼈던 자신의 결핍에 대한 울분과는 달리 이 영화에서 느낀 건 영화'연출'에 대한 욕망이었다. 내용과 너무나 잘 상응하는 박찬욱의 연출은 영화를 통해 어떤 이미지, 정서를 만들어내는 작업에 대한 욕망을 보여준다. 최근 로메르 영화를 정주행하며 영화의 새로운 힘에 대해 한가지 깨달았는데, 한 사람들 생각보다 정말 많이 담고 있다는 것이다. 로메르의 초기작들을 보며 느낀 것은 그가 어떤 사람일 것이라는 내 생각들에 완벽한 확신이 든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여러 영화를 보면 그 사람 내면의 레이어가 보인다는 것이, 이런 비물질적인 작용이 너무나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