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박찬욱 감독이 참여한 강의를 다녀왔는데, 영화의 소재를 택하는 과정을 묻는 질문이 있었다. 박찬욱 감독은 소재를 정하는 것에 있어서 방법론적으로 설명은 불가능하나 감독의 덕목 중 하나는 통찰력이라는 것이다. 영화의 소재를 발견해내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달할 수 있는 눈 말이다. 로메르의 초기작들을 보면서 나와 똑같이 삶이 단편적인 순간들로 이루어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로메르 영화에서 어떠한 기술도 없다고 생각했다. 형식은 그저 내용을 가리지 않는 역할로만 존재하고, 진실에 다가서는 것이 우선인 영화라고 말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 볼수록 자신의 실제 삶에서 끊임없이 떠오르는 작은 논제와 진리들을 영화화하는 것이, 내용에 대한 중요성보단 능숙하고 의연하게 시각화시키는 기술력에 더 눈이 가게 된다. (게다가 로메르는 다작을 하기 때문에) 홍상수가 남들의 눈에는 일반화되고 자신의 눈에 특별해지는 것을들 발견해낸다면, 로메르는 자신의 눈으로 발견했지만 남들에게도 보편화되는 일상적인 진리들을 말한다.
사실 작은 논제와 진리들을 영화의 소재로 삼는다는 것은 로메르의 모든 영화에 해당되기보단 도덕 연작에만 적용된다. 도덕 연작의 논제가 자신에게 어떤 무게를 지니느냐에 따라 영화가 관객에게 주는 깊이감이 다를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배루른 바보와 배고픈 소크라테스에 대한 논제를 끊임없이 지니고 있고,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욕망>의 내용적 측면을 정말 좋아한다. 내가 영화에서 내용적 측면을 중시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욕망>의 경우에는 내용적 측면에서 매우 이끌렸고, 이 영화를 통해 내와 진심으로 공명하는 영화(보편적이지 않고 나에게만 주관적으로 작용하는 영화를 만나는 것)은 아무리 형식이 뛰어나도 내용적 공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쨌든 영화의 본질은 연대이기 때문에. 따라서 도덕 연작 중 하나가 자신과 매우 연관되는 논제를 지니고 있다면 마치 인생 영화처럼 다가올수도 있을 것 같다. 보통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을 많이 꼽는 것 같다. 진실과 위선이라는 현대인들이 많이 공감하는 이야기이기에. 그런 의미에서 <오후의 연정>은 매우 사적이다. 앞서 말한 홍상수의 시각처럼 오후를 따분한 대상으로 존재화하고 있다. 도덕 연작들은 매우 구조적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인물이 깨달음을 얻건 아니건 제자리로 회귀하게 된다. 주인공들은 항상 자신과 대비되는 인물을 관조하고, <수잔느의 경력>에서도 남자 주인공이 수잔느 곁을 맴돌다가 루저같이 보이던 그녀가 결국은 자신과 다르게 승자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수잔느는 자존심이 없는 사람이다. 다정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헤픈 사람이기도 하다. 바보인줄만 알았던 그녀가 결국에는 남들과 다르게 자신만의 행복을 찾게 되고, 주인공은 그녀가 바보가 아니라 관대한 태도를 지닌 진정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된다. 이 다정함이란 키워드에서 <애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웨이먼드가 생각났다. 나는 웨이먼드의 사상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현재(특히 젊은 사람들) 사람들이 많이 간과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다정함과 측은지심이라고 생각했고, 이 관대함이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임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따라서 이런 관대함을 지니고 있는 것이 수잔느와 나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의문은 수잔느가 돈을 쓰는 것을 포함한 그녀의 처우가 관대함을 넘어선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것 또한 내가 매일 씨름하는 관대함과 호구잡히기라는 줄다리기 게임이다. 물론 영화적으로 캐릭터성을 위해 과장되게 표현했을수도 있겠지만 로메르의 경우 과장법이 아닌 진실로 그 인물의 행동을 그렸을 것이다. 결론은.. 수잔느는 호구일까 어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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