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너와 나> 2022, 조현철

Heeji 2023. 11. 2. 00:43

조현철 감독은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라고 했다. 삶에 대한 사랑일거라 예상했지만 영화는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한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강조한다. 대부분이 사랑받는 것이 능력이라고 착각하지만 진짜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몇 없다고. 하은이를 좋아하는 세미는 사랑하는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누구보다도 하은이를 아끼면서도 정작 하은의 마음을 가장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타자인 관객은 이런 세미의 행동과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왜 저렇게 행동하지? 라며. 그러나 다들 짝사랑을 하면서 세미와 같은 마음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내가 저 사람의 세계에서 도태될까 하는 두려움. 내가 그렇게 고귀하게 여기는 저 사람의 세계에 난 없는듯한.. 슬픈 점은, 현실에서는 세미의 사랑할 줄 모르는 태도와 그럼에도 하은의 세계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공존하면서도 두 가지 다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개의 가치는 어느 것도 욕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간절하고 큰 것들이다. 그렇기에 영화가 세미를 묘사하는 것처럼, 세미의 태도와 마음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너와 나>의 신기한 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보가 노출될수록 인물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초반부의 세미와 하은의 언행은 인물들의 관계 묘사에서 핍진성이 떨어진다고 할 만큼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는데 서사가 진행되면서 깊은 내면까지 드러나게 되고 그 마음들 때문에 실제 내가 겪었던, 내가 느꼈던 그 생생한 마음들을 떠올리게 되면 그들이 왜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지 수긍하게 된다. 그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모습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만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모습이 우리가 모두 겪었고, 가지고 있는 모습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사적 시간이 지나게 되면, 세미가 가진 두려움 만큼 하은의 두려움도 보이기 시작한다. 세미의 두려움은 하은의 세계에 존재하지 못하는 것이었다면, 하은의 두려움은 자신의 세계가 하은에게 드러날까 하는 두려움이다. 이 또한 사랑하는 태도가 아니라 ’사랑받으려는‘ 태도로써 올바르지 않지만 소멸될 수 없는 마음이다. <너와 나>의 가장 진실된 면은, 이런 추악하고, 버리고 싶고, 생각하기 싫은 사랑의 단편적인 부분들을 폭력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들 또한 불가결한 것임을 자연스레 ‘드러내면서’ 감싸안아주는 것이다.
세미는 잃어버린 하은이를 찾고, 잃어버린 개를 찾는 일련의 사건들로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다만 하은이를 보자마자 기쁨에 겨워 껴안는 것이 아니라 영화적 구조와 메타포를 위해 강아지를 향해 달려가는 것, 이와 같은 인서트(사물)의 기능들.(단편영화에서 보이는 듯한 짜치는 메타포들..)이 거슬리긴 했지만.. 어쨋든 그녀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세미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이 좋았던 이유는, 세미의 성장보다도 그것의 가치를 드디어 깨달아서이다.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써 성장하는 세미를 바라보는 마음은 <에에올>의 웨이먼드가 된 기분이었다. <에에올>을 보며 에블린의 변화가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그녀 자체에게 몰입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토록 소중하게 여겼던, 그리고 홀로 여겼던 다정함이라는 가치를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함께 알아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웨이먼드의 시선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와 나>또한 같다. 사랑받는 능력보다 사랑하는 능력이 더 크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써, 세미의 변화가 소중하게 느껴진 것이다.
그래서, H가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말이다. 때로는 너의 사랑이 내가 아닌 너만을 위한 것이라는 걸.. 영화를 봐도 절대 알지 못하겠만, 이 영화를 봐줘.
참 쓸쓸하다. 영화에서 연대자를 찾으면 뭐하나. 현실은 혼자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