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가을 소나타> 1979, 잉마르 베리만

Heeji 2023. 11. 11. 03:01

각본보다도 촬영에 놀란 영화. 인물의 깊이나 관계성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애초에 내용이 보편적인 것으로밖에 그치지 못했으며 개별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인물들만 놓고 봐도. 엄마와 딸의 관계에 비유해 따로 말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깊이가 없었고 비유라기엔 또 대사같은 부분들은 디테일하고 훌륭했으며 앞서 말한대로 인물로써 존재하지 않았다.

얕은 심도의 쇼트들을 보면 답답하게 느껴지기 마련인데, 얕은 심도의 기초적 기능인 '인물에 집중하게 하기'가 너무 잘 실천되었다. 일단은 굳이 얕은 심도와 클로즈업으로 os를 처리한 것에 의문이 들었는데, 대사로 플래시백의 기능을 충족하는 방법의 보완책으로 클로즈업과 관조적인 인서트를 몽타주시킨 것을 발견했다. 인서트도 전형적으로는 클로즈업되기 마련인데 관조적인 시선과 연극적인 몸짓을 띄우는 것도 너무 좋았고. 이런 정보들의 몽타주와 더불어 씬들의 몽타주도 훌륭했다. 심히 단절되는 느낌의 씬들인데, 오히려 이런 이질적인 느낌이 빠른 리얼타임 안에 깊은 감정이 나오는 것을자연스럽게 보이게 한다. 그치만.. 아쉬웠던 점은 이토록 빠른 시간 안에 예열 없이 인물들이 극적인 감정이 폭발될 수 있느냐이다.(예열이 있기는 하고 그 방법도 훌륭했지만 물리적으로 부족했다.) 에바는 어머니와 보낸 나흘의 시간으로 어머니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깨달은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표현한 적이 없었을 뿐, 분명 자신이 어머니를 혐오한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정도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가스라이팅 때문에 표현을 하지 못했다면, 갑자기 폭발하게 된 명분이 있어야 한다. 7년만의 만남이라는 장치 말고도. 그러나 영화는 가스라이팅이라는 상황 속에서의 에바의 심리를 비추는 것도, 모녀관계라는 것에 대한 작가의 사적인 시각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대사에서는 정말 노련함이 보였다. 현재의 시점에서 인서트와 대사만으로 모든 서사를 끌어오는데, 시적이면서도 충분히 묘사가 되고 그러면서 설명적이지는 않은.. 물론 배우들의 연기도 한몫하지만. 아무튼 프레임 내의 움직임과 그것으로 관객을 어떻게 압박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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