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타이페이 스토리> 1985, 애드워드 양

Heeji 2024. 1. 3. 19:45

새벽 두시에 <카페 뤼미에르>와 <타이페이 스토리> 중에 뭘 볼까 고민하고 있었다. 웃긴 것은 <카페 뤼미에르>는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이며 <타이페이 스토리>는 그의 연기작이라는 걸 모른 채로 말이다.
필름으로 찍은 것이 확실해보이는 노이즈와 색감이 현 시대가 아닌 어느 다른 흐름에 존재하고 있는 영화임을 말해줬다. 그러면서도 요즘 해외 영상 유튜버들이 이런 색감을 따라하려했구나 싶기도 했고. 일단 첫 쇼트부터 완벽했다. 미니멀함을 드러내고, 사실주의적인 영화이면서도 쇼트들은 계산적인 구석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난 <경멸>처럼 이런 쇼트들 (혹은 이미지라고도 할 수 있겠다. 몽타주와 같은 쇼트의 구성 혹은 배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쇼트 자체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을 가진 영화가 좋다. 프레임 내에 공백이 있어 미니멀하면서도 거시적인 선들이 존재해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이 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컷들의 길이, 한 쇼트 내에 인물-혹은 대사-를 담는데에 있어 조급함이 전혀 보이지 않으면서도 정말 적절하게 길이를 끊어낸다.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점들은 내가 해보고 싶었던-추구하는- 연출 방식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사건은 인물과 영화 속 세계와 같이 작가가 드러내고 싶은 것을 말해주는 장치이다. 사건이 내용을 설명하는 1차적 장치라면, 그 사건을 어떻게 연출하는지 라는 2차적 장치를 통해 근원적인 내용의 전달이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살인사건의 장면에서 죽은 시체와 흉기를 비추느냐, 살인자의 표정을 클로즈업하느냐와 같은 것들 말이다. ’애드워드 양-영화-은 침묵한다‘ 라고 말하고 싶다. 침묵하고 미동도 하지 않는 연출이다. 쇼트를 분할해서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감정을 담은 배우의 얼굴을 잡고, 중요한 사물을 보여주고, 몽타주시킬 수 있겠지만 애드워드 양은 영화매체의 특성-편집, 프레임 등-을 이용해 어떠한 작용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사건 하나만을 이용해 모든 것을 말하고 그것을 침묵으로 전해 관객이 다가갈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수전이 어머니에게 돈을 빌려주는 씬이 있는데, 어머니는 수전에게 돈을 받고 나서 버스를 타는데 바로 옆 전화부스에 있는 수전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행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 사이에 카메라는 롱샷으로 어머니와 행인을 지켜보고만 있다. 이처럼 어머니의 성격과 수전과의 관계를 사건 하나만을 통해 드러낸다. 물론 침묵하는 방식이 매력적인 것도 있지만 다르게 말해서 사건 구성 자체가 훌륭한 것이기도 하다. 밤에 수전이 아룽을 자신에 집에 불렀지만 머물지 않고 떠나가는 씬에서 방의 등을 키려고/끄려고 하는 인물들의 행동들, 떨어진 숟가락을 줍지 않고 수전 앞에 놓인 새 숟가락을 허락 없이 사용하는 아룽의 아버지 같은 것들 말이다. 사소하고 사적이고 일상적인 행동들이면서도 추상적이고 관객에게 무엇을 말하기에 충분하다. 공간을 계속해서 비추는 것도 침묵하는 태도로 인물들이 어느 곳에 위치하는 존재들인지 말하는 듯했다.
추가적으로 한 대사 안에서 쇼트를 분할하고, 이미지로 치면 인물이 프레임인-아웃 하듯이 대사 중간에 화자를 비추지 않다가-다른 쇼트를 보여주다- 끝날 무렵 화자를 보여주는 방식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사운드의 방면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엠비언스의 활용이 없으며, 술집 씬 같은 것에서 사운드트랙 정도를 간간히 활용한다. 쇼트(이미지)의 공백처럼 사운드도, 내러티브도, 서사도 굉장히 미니멀하다.
의외였던 점은 감상적인 면이 강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영화인데, 인물들의 상황과 성격에 사회적인 내용을 비추고 있다는 점이다. 동양적이고 구식인 부분과 서양의 문화와 새로운 개발들이 함께 이루어지고 있는 당대 대만의 모습은 아룽과 수전의 모습과 놀랍도록 닮았으며, 공간들을 비추는 쇼트들이 이를 강화하고 있다.
인물이던, 주제던 말하는 법에 대해 너무 휼륭하고도 견고한 자세를 지닌 영화다. 제대로 분석하면서 한번 더 보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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