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정말 접하고 싶었던 작가.. 에르빈 브룸을 한국에서 접할 수 있어 정말 기쁘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각의 형식(정의), Fat 이라는 에르빈 브룸이 관심가진 주제 두가지가 소개되었다. 에르빈은 조각의 고전적인 형태를 넘어서 사람, 옷, 사진까지도 조각이라고 정의하였다. 에르빈은 <8일만에 L사이즈에서 XXL사이즈 되는 법> 에서 “음식 섭취를 통해 살이 찌고 빠지는 과정은 우리가 살면서 가장 먼저 겪을 수 있는 조각적 경험” 이라고 하였는데, 조각의 형식에 대한 에르빈의 견해가 드러나는 말이다. 에르빈은 <멜팅 하우스> 연작처럼 기존의 정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역동적이고 동적인 것을 조각이라고 본다. 그런 그에게 끊임없이 변형하는 인간의 신체는 조각 그 자체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멜팅 하우스>에서 허상의 물체가 아닌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유명 건축물들을 녹여버린 것에 이어 <체육 교육의 비트겐슈타인 문법>에서는 각 전시가 진행된 도시의 유명 건축물들을 변형시킨다. 이처럼 에르빈에게는 정적이고 굳어있다는 기존 조각의 개념에서 벗어나 ‘변형’과 ‘동적’이 부여되는 것이 조각인 것이다.
<8일만에 L사이즈에서 XXL사이즈 되는 법>에서 드러난 ‘변형’인 살 찌우기는 후에 가시적인 조각품에서도 드러난다. 살찐듯한 모양의 집과 차가 포함된 <Fat> 연작에서는 조각의 형식을 변형시키는 것을 넘어 Fat이 가지고 있는 사회학적 현상에 한번 더 질문을 던진다. 비만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며, 비만이 된 ‘사물’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드러낸다. 이런 메세지적 주제는 팻 연작을 영상으로 담은 작업물에서 더 강하게 드러나는데, 이 영상의 형식 또한 굉장히 흥미롭다. <Am I a house?>, <I love my time, I don’t like my time>이라는 제목의 영상은 나레이션과 CG로 팻 시리즈의 집과 차가 말을 하는 형식의 작업물이다. 영상에서 집과 차는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으며 이상적인 신체의 개념, 예술의 형태에 대해 이야기한다. 10분 상당의 길이이고, 강한 주제의식이 담긴 나레이션이기 때문에 꽤 깊은 각본 작업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 영상 작업물은 조각을 넘어 스토리텔링(각본)이 더해진 형식을 가진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할 수 없는 형식을 이용해 강한 주제의식을 센스있고, 확실하게 전달해낸다.
최근 새로운 공간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을 하고 ‘영화는 어디에나 존재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였는데, <1분 조각> 연작을 통해 영화뿐만 아니라 예술은 어느 곳에서나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았다. 사실 <1분 연작> 시리즈는 실제 전시장에서 보는 것 보다 사진으로 보는 것이 훨씬 흥미롭다. 고정된 설치미술이 아닌 비정형화된 관객과 장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1분 조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형태를 변형시킨 <멜팅 하우스>에 이어 공간성과 주체를 완전히 전복시킨다.
마지막으로, 사진으로써의 조각이 있다. 에르빈은 <게으름을 위한 지시문>에서 자신이 모델이 되어 게을러지는 법을 다각도로 풀어낸다. 팻 연작에서도 보인 작가의 유머가 가장 크게 드러난 작업이다. 사진 형식의 작업 또한 조각이라는 에르빈의 주장이 설득되었던 이유는 사진들이 미학적인 요소보다는 내용적인것만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토제니론이나 사진 미학을 추구하는 사진이 아니라 ‘변형, 움직임’에 주목한 에르빈의 성격이 드러나는 새로운 형식의 사진이었다. 사진에 적힌 다양한 게을러지는 방법은 지극히 현실적이기에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추상적인 느낌보다는 하나의 체험을 하는 듯한 현실성을 가진다. 주목할 것은 ‘체험’ 이다. 나는 이 사진들을 보면서 하나의 체험을 하는 듯했다. 사진을 보며 에르빈이 강조했던 동적 요소들이 내 안과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살이 찌는 것처럼, 내가 조각이 되는 경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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